반복의 세월은
새로운 미각을 빼앗아 가고
능수능란해지는 뇌는
순수함을 야금야금 갉아먹지.
익숙함은 게으름을 꼬드기고
늘어가는 경험치엔
방어적 빗장을 단단히 채울 줄은 아나
그걸 여는 방법은 쉬이 까먹는다.
삶이 무료할 때 던져줄 만한
간식거리인 희망이란 놈은
건기에 시들시들한 나뭇잎처럼
탐할수록 자꾸 바스러지기만 하고
힘겨이 모은 추억이란 녀석은
그 값어치가 나날이 옅어진다.
하늘이 잠시 빌려준 젊음은
이미 옛날에 엿 바꿔 먹은지 오래고
천둥치고 비올 때면
감싸주고 우산 씌워주던
천사들은 하나둘씩
멀리서 숨바꼭질 하고 있네.
앞방에서 에헴하던 시간 보다
뒷방에서 골골해야 할 시간이 늘어나고
젖먹던 힘까지 짜내서
행복을 숨겨둔 구덩이를 파내보려 하지만
그 구덩이가 어디였는지
기억도 안 나네. 어디였더라?
그래
다들 그런 거야.
나만 그런 거 아닐진데
억울해하면 뭐할까.
알면서도 모른 척, 그러며 사는 거지.
청춘반납 독촉장 받고 버티다가
세월에 귀싸대기 한 대 맞았다고
주저앉아 징징대면서 누가 손 내밀어
날 일으켜 세워줄 거라 생각하면
경기도 오산이고 그 옆 동탄 가서
통탄할 일인 거 알아.
잘 알아도 슬픈 건 속일 수가 없네.
슬퍼도 혼자 일어나야 하고
시들어 부서지는 희망의 가루라도
조심히 긁어 담아 써야 하고
어디 숨었는지도 모를 행복 찾아
틈틈이 구덩이를 파야 하겠지.
그러나
내말도 더럽게 안 듣는
내 몸뚱아리와 정신머리
겨우 부여잡고
한숨 좀 돌리려는데
반갑지 않은 새로운 복병,
외로움을 만나
그나마 남은 기력을
또 낭비하게 되네.
아주 웃겨.
'시한수와 나한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오는 6월 10일 시 한 수 '비 오는 곳' (24) | 2022.06.10 |
---|---|
시 한 수 '싸움꾼' (18) | 2022.05.28 |
SNS 시 한 수 '등산' (15) | 2022.03.14 |
SNS 시 한 수 '겨울도시' (13) | 2022.01.23 |
시 한 수 'Too 청춘 to 청춘' (17) | 2022.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