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무장을 하고
야심한 밤에 나갔다 왔다.
열받는 일도 좀 있고
간혹 무인도에 혼자 고립된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이런 마음은 사람을 황폐하게 만든다.
그래서 옷을 줏어 입고 길을 나섰다.
야빔에 갈 데가 솔직히 어디 있을까?
옛날에는 친구집, 선배집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예약없는 민폐짓을 하면 안 되기에
목적지 없이 무작정 걸었다.
길에 사람도 차도 별로 없다.
문열린 가게의 불빛과
라이더분들의 움직임이 없다면
도시임에도 뭔가 황량하고
무서울 것 같은 분위기다.
마트를 갈까?
어디를 갈까?
심야영화도 코로나로 없어지고
마트도 9시면 문을 닫고
커피숍은 앉을 수도 없으니
난 갈 곳을 잃었다.
그렇게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아무 데나 걸어 다녔다.
바깥은 손이 시려운 날씨지만
중무장한 두터운 다운점퍼 안에서는
열이 나기 시작한다.
이 땀들이 식기 시작하면
추위가 밀려들기 시작한다.
얼른 다시 발길을 집 방향으로
돌렸다.
엘리베이터안에서
갤럭시 폰을 열었다.
65분.
8058보.
뭐야?
만보 못 채웠잖아ㅠㅠ
힘들어 죽겠는D
속옷이 다 젖게 땀을 흘렸더니
춥다.
이불속을 파고드니
오늘 열받게 한 해프닝의
35% 정도는 날린 기분이다.
라면 하나 끓이면
75%까지는 날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끓일까 말까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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