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잔상

Memory....I can smile at the old days...


1962년 6월 남산에서..

우리 형이 63년도 9월생이니

아마 신혼초인 이즈음이 지나고

겨울에 우리형을 가지신 모양이다.

앞에 어린 꼬맹이가

우리 둘째 외삼촌이라는

어머니 설명에...캬캬...

이제서야 내가 육남매 장녀로

동생들을 업어 키웠다는 말씀이 실감난다.



63년생 형과 67년생 누이가 아장아장 걸을 때는

생각하기도 싫을만큼 고생의 고생을 하실 때란다.

그 고생이 빛을 보기는 했지만...

과연 어디까지가 빛이고 어둠인지...


어라...난 왜없어?

라고 어렸을적에 뾰루퉁하게 물었던 기억이 있는 사진..

역시 내가 태어나기 전 사진이다.

고생의 고생을 하던 시절 사진치곤

차림새가 그나마 괜찮아서 이상하다 했두만

그당시에는 가족끼리 외출과 사진촬영이흔하지 않은 시절이라

한 번 나들이 하면 때빼고 광내고 기념사진 찍으셨단다..ㅋㅋㅋ





드디어 69년도 9월에 내가 태어났다.

과연 태어난 값어치를 하며 살고 있는지..

아랫사진은 돌사진이라는 것 같은데

어머~내가 저렇게 이뻤는데...지금 왜이래??



우리 누이가 참 싫어하는 사진중의 하나다.

엄마 엄마 어렸을 때 사진 없어..라는 조카의 질문에

창피해서 안보여준다는 우리 누이...

ㅋㅋㅋ 어렸을 때 사진 보면 용됐다..용됐어.

동네에 리어카 사진사가 오면 돈아까워 말리는 어무이를 뒤로 하고

부지런히 우리들 챙겨 나가신 아부이 덕택에

어린 시절 사진이 제법 많다.



드디어 가족사진에 내가 끼었다.

여기가 어딘지 오래전에 들어서 까먹었지만

아마 장충단공원 즉 장충제육관 부근이 아닐까...

자기 새끼는 누구나 다 이쁘다지만

어렸을 때 통통하니 예쁘고 똑똑해서(?)

동네사람들 예쁨을 한몸에 받았다는

어머니 말씀...평생 받아야 할 사랑을 그 때 다 받았나..??

지금....뭐여??



음..예나 지금이나 대갈통(?) 크기...아 짱나~~
형이 소풍간다고 어머니가 김밥을 싸시면

학교 안다니던 6세 남아(?)는

뒤늦은 기상에 꼬투리만 서너개 남아있는

김밥을 보고 울음을 터뜨렸고

날 위해 과자며 김밥 서너개 남겨오는 형을

온종일 기다렸다.

어머니 왜그러셨어요?? 김밥 좀 넉넉히 싸서 남겨주시지..(오래전 질문)

그 땐 김밥 재료 살 돈도 아끼느라 그랬지...(오마니 왈)

그래도내가 성장하면서 삼형제중 최고의 부를 누렸다니...쩝..

그렇긴 한듯...ㅋㅋㅋ


일이 있어 어머니는 못오셨다나...

이 흑백 사진 뒤에는

1972년 8월 29일 (음력 7.21)

집에서 3시경 출발

4시경 남산 도착

제범이 생일 기념사진 촬영

6시 20분 남산에서 내려와 7시쯤 귀가.

이렇게 적혀있다.


이제서야 사진이 칼라로 넘어간 듯..
남파간첩이신가?? ㅋㅋ

나의 저 불룩한 배는 그대로구먼..

나의 저 터프한 포스...다 어디로 갔나??

어디서 사셨는지

참 구엽게도 입혀 놓으셨네...



이사진은 우리 가족에게 큰 의미가 있는 사진이다.

우리가족사가 나름 발전된 근대사로 넘어오면서

우리가족의 뭔가 절정기에 찍은 사진이기 때문이다.

한양대 금속공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고시만큼 힘들다는 당시 KAIST에 합격해서 다니다가

LG연구소 입사가 결정된 KAIST졸업식에

정말기쁜 맘으로가족들이 모두 갔었던..

아마도 잘 나가던 우리 형이

우리 어머니의 삶의 전부이자

가족들의 자랑이었던 시기이다.

오랜만에 장록 속 깊이 숨어있던

사진첩을 꺼내어

수많은 사진속에

몇장을 꺼내와 스캔을 했다.

세월의무자비한과속에 대해

아무도 말릴 수 없는 무기력함이

때론 슬프지만 그래서 인생이 값어치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며 위로하고 싶다.

부모님의 사진은

우리 자식들이 오래토록 보관하겠지만

결국엔 그 사진들과

내가 부지런히 모아온

내 오랜 여러 사진들은

과연 나중에 누가 보관해줄까??

그런 생각을 하다

생각을 멈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