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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잔상

인간관계 해프닝, 빈말 반복하는 사람들

대학원 다니며 운이 좋게 행정조교 일을 같이 시작했다. 하릴없이 연 900만원이 나오던 시절. 지금 돈으로 하면 약 1200~1500만원 정도 느낌이랄까? 용돈은 용돈대로 받고 월급은 월급대로 챙기던 내 인생 신났던 시절.

그 행정조교 자리도 교수님 최측근이란 이유로 굽실대는 사람들이 생겼다. 바로 요즘으로 얘기하면 연구교수님. 그땐 보따리 사간강사분들이었다. 그렇다고 어린 내가 그걸 즐기기엔 나는 내 다른 즐거움들이 너무 많던 시절.

유난히 나에게 친근하게 굴던 나이 많으신 중년 아저씨 학생 한 분이 계셨었다. 어린 나는 그분이 속셈을 가지고 내게 접근한다는 걸 눈치 빠른 편인데도 미처 몰랐었다.

자기 직장일이 너무 바쁘다고 리포트 걱정을 하시면서 정중하게 나보고 리포트를 써달라고 부탁을 했다. 나에게 친절한 아저씨셔서 한 번 인 줄 알고 성심성의껏 써서 드렸다.

흡족해 하시더니 리포트 점수도 A0 받으셔서 좋아하셨다.좋아라 하시며 내게 음료수라도 사다줘야지 하시길래 아니예요~손사래를 쳤다.

근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

1.아이고 우리 조교님 음료수 사다드린다는 것 깜빡했네.

2.아이고 참 우리 조교님 음로수 사다드려야지.

3.아이고 정신머리 봐라.
우리 조교님 음료수 사다드린다면서 맨날 까먹네.

4. 앗차 음료수 안 사왔네.

이 빈말이 4번이나 반복 되는 순간 그 사람의 눈빛에서 교활함을 읽었다. 난 음료수를 바라지도 않았는데 이 사람은 왜 저 빈말을 반복할까?  

내가 제일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이 같은 말 반복하는 사람인데 저 인간은 빈말을 반복. 정말 사올 맘이 있으면 바로앞 복도에 널린 게 음료수 자판기 인데..뭐지? 이사람?

근데 학기말 즈음 교수님들이 리포트 과제를 내주시기 시작하자 그 인간이 교학과로 또 찾아왔다.

이번엔 부탁도 아니라 명령조로 내가 리포트를 잘 쓰니 이제부터 자기 리포트는 나보고 맡으란다. 아마 사회물을 잔뜩 먹은 그에게 어린 내가 만만해 보였나 보다.

하지만 그사이 난 그의 교활함을 충분히 읽었고 사실 나도 그리 만만한 스타일은 아닌데 초반에 나에게 보인 친절은 어리숙하게 나를 봤고 나를 이용하기 위한 초석을 깐 것이었다.내가 말발이 세던 시절이라 똑부러지게 얘기했다.

저는 xx님이 그때 회사일로 바쁘시다고 하셔서 한 번 도와드린 것 뿐이에요. 요즘은 저도 바빠서 리포트를 대신 써드릴 순 없어요라고 사무적으로 말해버렸다.

순식간에 인상이 일그러진 그가 화를 참으며 알겠다고 하고 밖으로 나갔고 며칠 후 나는 수업이 끝나고 조교들 모임에 한 잔 하러 나가는 길에 학교앞에 서 있던 그와 마주하게 되었다.

별로 아는 체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른이라 어..아직 안 가셨네요. 뭐 하고 계세요? 아는 척을 했더니 내 아는 척엔 반응도 안 하던 그가 같은 조교들과 사라지는 내 뒷통수에 대고 이렇게 지껄였다.

'저 새끼 저건 맨날 저렇게 몰려 다녀'

그날 이후로 나도 이 사람을 생깠다. 그나마 다행인 건 같은 수업을 듣지만 내겐 행정조교라는 작은 권력이 있었다.

가끔이지만 채첨을 도와달라는 교수님도 계셨고 가끔은 이 학생 수업태도 별로죠? 물어 오시는 강사님도 계셔서 그럴 때 내가 작은 입김을 불어 넣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걸 그가 알고 있어 그나마 더 이상의 공격은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저런 인간을 직장 상사로 모시고 있었다면? 상상할 때마다 끔찍하다.

나쁜느무 개C끼♡♡

결론 :  빈말 반복하는 바보짓 하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