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잔상

손절 지인 뒷담화 2탄

이 친구는 아는 선배와 약속이 있어 만났다가 선배의 후배가 연락이 오면서 우연히 동석을 하게 되었다.

청춘시절의 특권 중 하나가 지인을 통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지치기하듯이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점인데 만나고 보니 이 친구가 마침 같은 동네 15분 거리에 사는 녀석이었다.

선배와 셋이 신나게 술 한 잔 마시고 신촌에서 같이 2호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곧바로 친구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서로 같은 동네라는 공통점 하나로 친해졌지만 이 친구와 나는 서로 많은 점들이 달랐다.



굳이 하나하나 설명할 수는 없지만 친구를 좋아하고 배려할 줄 알지만 소심한 내 성격과 약간 들풀처럼 자라 저돌적이고 진취적이지만 뭔가 경험이나 생각이 깊지 않은 스타일이었던 친구는 서로의  단점을 상호보완 해주는 점이 잘 맞아 한 번의 다툼이 없이 절친이란 딱지를 달고 약 15년간을 무척이나 친하게 지냈었다.

하지만 누구나 그러하듯이 그냥 청춘이란 서로 이꼴 같은 위치에 같이 서 있다가 보면 어느새 세월이 서로 끌어당긴 위치가 변해 있음을 마주하게 된다.

그동안 내 조언에 귀를 기울이고 얘 말은 헛소리 같아도 함 들어봐야 한다며 나를 존중하던 녀석도 본인의 욕심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이자 내 조언에 얼굴을 붉히고 15년 만에 처음으로 술자리에서 심한 말다툼을 벌이게 되었다. 역시 서로 가지치기로 친해진 다른 친구들이 말리지 않았다면 좀 더 큰 다툼이 될 수도 있었으나 이날 이후로 녀석은 나를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겨우 맘을 다스리고 아무 일 없는 듯 연락을 하며 관계를 유지하려 했는데
녀석의 비아냥거림은 더 심해져 갔지만 15년 지기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아 나는 참고 참다가 어느 날 나도 한계점에 도달했다.

여느 때처럼 함께 모이던 4인방 술자리에 나오라는 연락이 왔다. 내심 녀석의 기분이 풀렸구나 싶어 기쁜 마음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5분쯤 후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

친구 :  뭐 해?
나 :  나갈 준비하고 있어.

친구 : (비아냥대며) 응..우리 이미 2차까지 끝내서 3차는 좀 힘들 거 같으니까 그냥 집에서 편히 계셔~






그렇다. 모임 시작점이 아닌  파할 시점에 전화로 불러내놓고 외출 준비하던 나를 놀린 것이다. 동시에 그 친구로 인해 친해진 4인방 모임에서 나를 왕따 시키겠다는 암시의 전화였던 것이다.

화가 심하게 솟구쳤다. 이 순간 이제 이 친구는 손절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후 녀석의 전화와 4인방들의 전화가 몇 번 왔지만 내가 받지 않으면서 이 친구와 4인방 친구들과는 동시에 한순간에 관계가 정리되었다.




모은 돈으로 작은 아파트를 사는 게 안전투자라는 나의 충고를 무시하고 주식으로 거액을 날리고 여기저기 돈을 꾸러 다니다 내게도 손을 벌렸을 때 나는 도움을 주지 않았고 궁지에 몰린 녀석이 보험회사에 들어가 영업소장의 유혹에 빠져 주변 지인영업으로 고액의 변액보험을 팔고 다녔다.

보험영업을 도와주지 않는 친구는 진정한 친구가 아니니 당장 수첩에서 지우라 했다는 영업소장의 말을 내게 전할 때 엄습해 온 불안감이 결국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내 말대로 그 친구가 당시 모은 돈으로 노원구 작은 아파틀 샀다면 지금쯤 그 친구는 최소한 3억 5천짜리 자가주택 소유주가 되어 있을 텐데라는 아쉬움과 회한이 밀려든다.



그 손절 후 4년쯤인가 지나서 갑작스레 녀석의 문자가 왔다. 잘 지내냐며 언제 한 번 만나자는 글들이 보였지만 나는 조용히 삭제를 눌렀다.

그리고 7년쯤 지났을까 싶을 때 갑자기 4인방 중 한 명의 전화가 걸려 왔다. 그 친구의 연락처를 내가 혹시 아냐고 묻는 전화였다.

7년간 거액을 납입한 유니버셜 변액보험 만기일이 돌아왔지만 원금손실로 그 지인들이 난리가 난 모양이었다.

그들도 그 녀석과 연락이 끊긴 것으로 보아 아마도 녀석이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밤 11시에도 뭐 해?라는 문자를 보내고 슬리퍼 질질 끌며 나가서 동네 편의점 파라솔 아래 앉아 맥주 한 캔과 새우깡 하나를 놓고 앉아 신선한 가을바람을 즐길 수 있었던 단순한 놀이가 두고두고 그리움이 될 줄 미처 몰랐다.

나 한강산책 나갈 건데 같이 안 갈래? 그럼 후다닥 튀어나오는 친구의 소중함이 얼마나 귀한 건지도 그땐 상상을 못 했다.

누구의 잘못일까?
친구가 돈을 빌려달라 했을 때 안 빌려준 내 잘못이었을까?

아님 보험 영업 도와달라며 내 지인들과 친척들의 이름과 전번 리스트를 요구했을 때 그 리스트를 넘겨줘야 했을까?

모르겠다.

인간관계는 보통 어느 한쪽의 잘못이라고 보기엔 문제가 있다. 그냥 인연의 시작점과 도착점이 있을 뿐이고 책임이 있다면 세월의 책임이다.



녀석과 손절한 후로 벌써 16년이 흘렀다. 어디 있을지 모를 친구야.

그렇게 내 얘길 귀담아듣던 네가 왜 그렇게 이상한 사람들 얘기만 들으며 나락의 길을 걷게 됐는지 참으로 안타깝구나.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던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지내렴.



손절 지인 뒷담화 1탄 보기

https://paran2020.tistory.com/m/6160

손절 지인 뒷담화 1탄.

제 지난 지인 중에 명품족이 몇 명 있어요. 전 아울렛 정도에서 국내 브랜드는 엄청 따지는데 명품엔 별로 관심이 읍답니다. 여하튼 그 친구는 이거 명품이다...이런 류의 자랑을 하지만 관심 없

paran2020.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