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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잔상

오마니 교육(?)하기

백화점만 가시면
뭐 이리 비싸?
완전 백화점은 바가지야.
안 사 안 사 딴 데 가자.
직원들 안색이 일그러지게
이 쓸데없는 말을 입에 달고 사신다.

집으로 돌아오면 나의 일장연설이 시작. 비싸서 안 살 거면 엄마 토 달지 마시고 그냥 둘러보고 올게요라고 하세요. 이 잔소리를 수년을 떠들어도 못 고치신다.

장바구니를 들어드리려고 아파트 상가에 종종 따라가면 반찬가게 들리실 때마다 헛소리를 시전 하신다. 지난번 파래무침엔 돌이 나왔다는 둥 무슨 반찬은 맛이 없어 반도 못 먹고 버렸다는 둥.

단골이라 무시는 못 하지만 쓴 미소를 짓고 있는 주인장 아주머니의 표정은 나만 보이는 모양이다. 반찬을 고르는 다른 손님들도 계신데 우리 어머니지만 진상도 이런 진상이 없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또 일장연설을 시작한다.  파래무침에서 돌이 나왔으면 바로 가서 바꿔오던가 반찬이 맛이 없었으면 담부터 그건 안 사면 되지 다른 손님도 계신데 그런 쓸데없는 얘기는 왜 하셔?

우리 가고 난 다음 저 주책 할망구 재수 없단 소리를 듣고 싶으셔 아님 우아한 단골할머니 소리를 듣고 싶으셔? 이 숱한 잔소리에도 너는 떠들어라 난 내 갈 길 간다의 고집은 쉬이 꺾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현금결제를 선호하시는 어머니가 잔돈 계산에 번거로움을 얘기하시기에 가족카드로 신용카드를 만들어 드렸다.  그리고 자주 가시는 파리바게뜨의 해피포인트 카드를 하나 드리면서 빵 사실 때 요 두 카드를 내밀면 엄마는 세련된 할머니가 되실 거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실제 신용카드와 포인트카드를 사용할 때마다 어머나 할머님이 이렇게 포인트적립 하시는 분 첨 봐요. 세련된 할머니시네란 칭찬을 듣고 오시더니 엄청 기분 좋아하셨다.  

그렇게 수년을 지껄여도 안 먹히던 나의 잔 소리가 누군가 세련된 할머니란 칭찬 한 마디를 던지자 그때부터 어머님이 춤추는 고래가 되시기 시작했다.

미장원 가셔서도 쓸데없는 자랑이나 너무 수다 떨지 마시라는 나의 잔소리에 알아 알아 나도 알아라고 화답하셨고 시장 가셔서 그거 500원 깎아서 무슨 의미가 있냐는 잔소리도 어느 날 알아들으셨는지 그 후론 시장을 가셔도 500원을 깎으려는 행동도 안 하시기 시작했다.

아파트 지하상가에서는 세련된 할머니, 미용실에서도 점잖으신 잠실 할머니 애칭을 들으시는 맛에 즐거워지신 어머니는 그 후론 우아함에 중독되셨다.

어릴 땐 부모가 자식을 교육하지만 부모님이 늙으시면 때론 자식이 부모를 교육해야 할 때도 있다. 에너지를 아끼시려던 엄마는 맨날 방문 열고 돌아다니는 어린 내 뒤통수에 대고 넌 도대체 누굴 닮아 말을 안 듣니? 방 다 식는단 말이야. 방문 꼭 닫고 다녓!!! 그러셨는데...

세상은 살다 보면 참 웃긴 일도 있다.
아니 엄만 도대체 왜 그리 명심을 안 하세요. 내가 잔소리하는 게 나 위해서 해요? 엄마가 말을 이쁘게 하고 엄마가 행동을 잘하면 엄마가 대접받는 거예요. 거꾸로의 교육이 시작되었고 그 효과에 어머니도 어느 정도 즐거워하셨다.

내 지겨운 오랜 잔소리 후에 우리 어머니는 다른 억센 노인들과 달리 대접받으시는 점잖은 노인네가 되셔서 그 맛을 오랫동안 음미하셨다. 그러나 그 잔소리의 귀차니즘은 어릴 때 내가 그랬듯이 어머니도 참 힘드셨을 거다.


https://youtu.be/sGyxo-_6X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