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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잔상

앞집 덕수네

골목대장 덕수는 참 멋진 아이였다.
아이답지 않은 리더십과 예의를 가지고 골목길을 휘두르던  그 녀석은 항상 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가난의 표식을 완전히 떨구지 못한 우리 집에 비해 이층 양옥집 주방밖으로 미제 오븐에서 달콤한 카스텔라 굽는 냄새가 풍겨오던 우리 앞집 덕수네는 우리 골목의 대표 부잣집이었다.

퇴근길이면 포마드 발라 넘긴 단정한 머리에 고운 양복을 입으신 그 집 아저씨는 멋진 자세로 골목의 아이들과 악수를 하시면서 등을 두드려주셨는데 잠바차림 우리 아버지는 방에서 툭하면 엄마에게 반찬투정을 하고 계셨다.

시간이 흐르며 아이들의 골목길 우정과 어른들의 따스했던 친분들이 하나 둘 이삿짐을 싸며 떠나는 사람들로 깨질 무렵 우리도 눈이 빠지게 완공되길 기다린 신축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어느 날 우리 앞집 아저씨가 구청장에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 아저씨는 아쉽게도 낙선을 하셨다.

그렇게 그 아저씨는 선거 실패로 가족들을 셋방으로 내모시고는 얼마 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그 후 쑥덕이는 사람들 입방아 속에서 동네 아이들과 젊잖은 악수를 나누시던 그분이 실은 가정폭력이 심했던 분이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어쩐지 어린 우리들이 동네를 뛰어다닐 때 저녁을 먹으러 들어오라는 아버지 소리에도 난 더 놀다 들어갈 거야라고 소리를 쳤지만 덕수는 골목길에 아버지가 나타나 악수를 시작하면 굳은 표정으로 집으로 뛰어 들어갔던 모습이 그제야 기억이 났다.

부잣집이었던 덕수네는 아버지의 출마로 남은 가족들은 가난을 물려받아 뒤늦은 고생에 시달리게 되었고 반찬투정을 하시며 맨날 화를 잘 내시던 우리 아버지는 모아 놓은 재산을 고대로 가족들에게 남겨주고 가셨다.

어릴 때 너무나 차이 나던 빈부격차 때문이었을까? 이상하게 난 그 집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집 주방에서 그 아주머니가 자주 굽던 카스텔라 냄새며 골목대장 덕수와 뛰어놀던 그 골목길의 생동감이 툭하면 나를 어린 시절로 불러들인다.

즐거웠으나 지속되지 못한 그 시절 잠깐의 인연들. 계속되었어도 별 수 없었겠지만 그 덕택에 상상하면 여전히 단맛이 빠지지 않는 사탕을 입안에 굴리는 느낌이 든다. 추억은 참 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