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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잔상

1월 5일 금요일 날씨 흐리고 미세먼지 심한 날.

살다 보면 특별한 원인이 없는 것 같은데 시름시름 아픈 날이 있다. 날씨를 많이 타는 나는 온도가 좀 높고 미세먼지가 극심한 날이 항상 이유 없이 아픈 날이다.

머리가 아프면 타이레놀을 먹으면 쉬이 두통이 사라지고 감기 기운이 있으면 쌍화탕과 화이투벤 두 알을 먹고 푹 자면 아 그래도 약발이 도는 구나~란 안도감을 느끼는데 이렇게 이유 없이 몸이 시들시들 아플 땐 잠을 더 많이 자도, 무슨 약을 먹어도 아무 효과가 없고 살의 질이 바닥을 친다.

날씨를 내 맘대로 바꿀 수도 없고 이럴 땐 그냥 얼른 추워지거나 비가 내려 세상의 모든 먼지들을 말끔히 청소해 주기 만을 심히 바랄 뿐이다.

이렇게 컨디션 난조를 겪을 때엔 머피의 법칙이 하나 있다. 내가 좀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지인들과 술이라도 한 잔 하고 싶어도 다들 카톡 하나 하는 넘들이 없는데 컨디션이 난조를 겪을 땐 꼭 놀자는 연락이 온다ㅠㅠ. 오늘도 다들 무슨 약속이나 하고 오늘 Hans 컨디션 안 좋으니 이때다 하고 기다린 것 마냥 전화가 계속 연이어 왔다.

물론 안부전화도 있었지만 왜 희한하게 심심해서 전화통화라도 했으면 하는 날엔 조용한 휴대폰이 컨디션 안 좋은 날엔 꼭 울려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저녁을 먹고 났더니 피로감이 더 훅 밀려든다. 그래선 안 되지만 아고고 죽겠다~가 입에 붙은 채로 침대로 들어가 대충 한 시간도 넘게 잠이 들었다 깼다.

식사를 한 직후에, 컨디션이 안 좋은 상태로 잠이 들었으니 그 잠이 유쾌한 잠이 될 수가 없다. 베갯잇에 침은 왜 그리 더 많이 흘렸는지. 온몸은 왜 그리 저리고 쑤시는지. 기분이 더 엉망이 된 듯했지만 그래도 그 짧은 잠의 후진 여운을 몸을 한참 뒤적이며 털어 냈더니 약효를 본 것처럼 조금씩 조금씩 에너지가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마음속 누군가가 꼬드기듯이 계속 말했다. 샤워 해~~따뜻한 물로 샤워 해~~~.  바로 옆에 붙은 욕실로 몸뚱이 하나 옮기는 데도 이런 꼬드김과 에너지가 필요한 날들이 있다.

휴대폰을 들고 어제도 입고 오늘도 입었던 티셔츠와 반바지를 벗고 웨이브의 궁금한이야기Y를 틀어 놓고 샤워 물줄기를 맞으니 아~~좀 살 것 같다란 생각이 들었다.

전청조 아버지도 사기꾼, 그 딸도 사기꾼. 관찰력이 없거나 너무 일찍 집에서 독립해 독불장군처럼 산 사람들은 이 DNA의 무서움에 대해 잘 모르거나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 좋은 대학을 나와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던 그 사람도 여기저기 말썽을 피우며 맨 법원을 들락거리는 모습은 사기죄로 감방을 드나들었다는 그의 아버지 모습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DNA는 정말 무서운 존재다. 부모를 욕하면서 따라 하게 만드는 무서운 조종력을 가진 리모컨과 같다.

얘기가 또 옆길로 샜다. 뜨거운 물로 몸을 지지고 나니 또 허기가 느껴진다. 컨디션이 안 좋으면 식욕이 떨어져야 하는데 어째 근 몇 년간은 몸이 아파도 식욕이 떨어진 적이 없다.

어찌 보면 몸이 아픈 게 아니라 정신이나 마음이 아픈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진짜 몸이 많이 아픈 사람은 식음을 전폐하기 마련인데 난 아프다면서 뭘 먹지 고민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렇다. 스트레스에 약한 사람은 작은 일에도 몸에서 머리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을 잔뜩 내뿜는다.

오늘 아침 말이 안 통하는 가족의 전화 한 통이 그렇지 않아도 컨디션 난조를 겪는 내 일상에 쐐기를 박아버렸다. 방법은 하나다. 말이 안 통하면? 말을 섞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