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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잔상

굴뚝소제부, Chimney Sweeper by W.B.

오래된 책들 중에 개인적인 추억이 뭍어있어 버리지 못한 낭만주의 영시집입니다. 영문학 전공하는 지인이 영어공부 하라고 96년도에 선물한 책이지요. 그땐 가이드포스트나 YBM 영한대역 서적으로 가끔 카페에서 공부하는 척 개폼 많이 잡았었지요. 생각해보니 저도 그땐 카공족이었네요.

노랗게 찌든 이 옜 시집을 다시 꺼내 펼쳐보는 이유는 어떤 척^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참 좋아했던 시 한 편이 있어서입니다.

48P에 있군요.
굴뚝청소부도 아닌 굴뚝소제부.

작은 깨알 글씨들이 예전엔 참 잘 보였다는 사실이 신기하네요.

굴뚝소제부...

When my mother died I was very young.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아주 어렸었다.

로 시작하는 이 시는 다소 종교적이긴 하지만 어린시절 허약하신 어머니가 나를 두고 돌아가시면 어떡하나 전전긍긍했던 소년의 정서와 맞물려 꽤나 감동깊게 읽고 또 읽던 시였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열심히 외웠던 단어, 숙어들도 많이 까먹었고 설령 기억해도 쓸 데가 없는 자산이 되어버렸습니다. 굴뚝소제의 기술처럼 말입니다.

잘 모르겠지만 그래서 그럴까요? 전 굴뚝이란 단어가 주는 정감  그리고 높이 치솟은 굴뚝이 주는 묘한 정서를 사랑합니다.

이젠 주변에 연기만 나는 아니 땐 굴뚝의 사람을 만날 일은 있어도 굴뚝을 바라볼 수 있는 일은 흔하지가 않습니다.

아마 대기업 공장의 대형굴뚝엔 굴뚝소제부가 아닌 하청업체 인부분들의 일당제 청소일만 있지 않을런지요?

흐린 삼일절 창밖을 내다보다가 마침 찍어 놓은 굴뚝사진을 보며 청년시절 즐겨 읽던 영시집을 꺼내어 윌리엄 블레이크의 옛 시 '굴뚝소제부, Chimney Sweeper'를 되새겨 봅니다.

(재건축을 앞둔 둔촌주공apt)

(강남 고속버스터미널)